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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나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나, 진정한 ‘나’는 정말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눈으로 본 ‘나’인가. 참으로 헷갈려 했던 적이 많다. 사실 모르겠다. 사람들에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사랑하는지 내 마음 깊숙히 숨겨두었던 엉망스럽게 물러터진 나의 모습까지 사랑하는지.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라서, 불꽃 처럼 순식간에 타오르는 나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사그라드는 나의 모습도 나기는 나다. 당신은 몰랐으면 하는데, 재채기도 사랑도 숨길 수 없듯 내가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당신은 기어코 나를 알아차리더라. 정부의 프로파간다처럼, 호기롭게 취업시장에 나를 팔려고 했을 때 처럼, ‘용맹한, 도전적인, 열정적인, 똑똑한’ 을 부끄럽게도 사람들에게 내세운 적이 참으로 많았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나는..
골목길 골목길_심민경 수업 끝을 알리는 학교 종을 듣자마자, 학교 후문을 나와 골목골목을 지나서 집으로 가는 길이 난 참 좋았다.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집 현관에 던져버리고 나와, 대현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생각에, 새로 배운 소나티네를 얼른 쳐보고 싶어서 피아노 학원으로 뛰어갈 때나.생명줄 교회가 있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개바위 언덕 옆문을 빠져나오면 공덕현대아파트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었는데 그 놀이터가 우리 동네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열 살까지는 그곳 미끄럼틀 꼭대기에서 남산타워를 구경했다. 몇 해가 지나 남산타워를 구경하는 낙도 새로 생긴 아파트의 탄생과 함께 사라졌다. 그보다 더 어릴 적 놀이터에 다니는 동안, 매일 방앗간에서 무언가를 빻는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후에 그..
라디오 누구는 나에게 음악 취향이 애늙은이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대부분은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세상에 나왔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의 애늙은이 음악 취향은 엄마의 태교모음 집에서 이 할, 아빠 차 뒤에서 이 할, 지나가는 광고 음악에서 일 할, 나머지는 즐겨듣던 라디오에서 나왔다. 나는 언제 라디오를 많이 들었을까. 사람들이 mp3를 목에 걸고 다녔던 시점과 더불어, 중학교때 특히나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분주하게 영어학원을 다니던 시절, 학원 셔틀버스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버스기사님들이 좋아할 법한 라디오 퀴즈가 흘러나올 때 등원을 하고, 잔잔하고 감성이 묻어나는 곡이 나올때 쯤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마포에서 공덕 오거리에서 P턴을 하고 신호를 기다리며 대흥역 방향으로 갈때 쯤에는 항상 라디오..
똥통 순수하고 귀여워 보이는 꼬맹이들도 어른으로 자라면서, 점점 그 선함과 순수함을 잃게 되는 걸까. 호주 하워드 연립 정부 시절, 망명 신청자들을 난민으로 받지 않기 위해, 그들이 자발적으로 본국으로 돌아가게끔 교묘한 술책을 썼다는 내용. 누군 아무런 걱정 없이 맛있는것 먹고, 꿀잠 자고 친구들과 가족들과 일상의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지구 반대편 누구는 일상이 전쟁통에 물 한모금도 제대로 마실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원래 그런거야, 빈곤과 전쟁은 어디나 존재하지, 카르마야- 라고 단정짓기엔 세상은 조낸 커다란 똥통 속 같구나. 아이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살 순 없는건가. UNHCR 과 같은 기구도 펀딩에 의존하고 있고, 가장 입김이 센 나라인 호주의 영향에 설설 기었다는 아티클을 읽었는데, 그냥 기가 차고..
향수, 기억되고 싶은 증거 ​ 본래 사람은 저마다 다른 향을 가진다. 비누, 바디클렌저, 샤워젤, 애프터쉐이브, 스킨로션, 향수를 바르기 전, 몸 속 부준히 움직이는 세포 하나 하나의 화학작용이 모여 몸에 맞는 향과 맛을 만들어낸다. 같은 향수를 뿌려도 사람마다 다 다른 향기가 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몸 속에 일어나고 있는 화학작용의 결과물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우린 매일 향을 입고, 바르고 또 다른 향을 만들어 낸다. 이른 아침 상쾌한 공기 냄새를 채 잊기도 전에 지하철로 들어가는 계단을 지나, 개찰구를 지나, 출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플랫폼에서 보편적인 남성다움의 스킨 냄새, 향수 냄새가 난다. 열차가 오고 있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오르고 내린다. 어지럽게도 꽉 찬 열차 내부만큼이나 여러 향들이 시끄럽게 내 머릿속에서..
사대주의자 아닙니다. 2011년에 영국 들어가기 전, 모든 입시가 끝나고 나는 이태원 아웃백에서 약 4개월 동안 일을 했다. 이태원이다 보니 외국인들이 정말 많이 왔고, 주말엔 외국 가족들이 많이 왔다. 나는 서버로서 지정된 테이블의 주문과 계산을 담당했다. 그렇게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한 가지 재밌는 점을 발견했는데, 바로 우리나라와 외국 아이들의 메뉴 선택권이었다. 한국 가족들이 오면 메뉴를 선택할때 주로 엄마나 아빠가 대신 주문 선택을 해주거나 이따금 아이가 선택을 하면 "그거 말고 이건 어때?" 라며 제안 아닌 제안으로 다른 메뉴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반면, 미국인 가족들이 왔을 때는 엄마와 아빠는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고를뿐, 아이의 메뉴 선택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기다려주고, 아..
The Circle of Life 110A 번 버스을 타고 녹사평을 지나 삼각지를 지나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버스 맨 앞 좌석에 아빠 무릎에 한창 말을 배워가는 딸이 앉아, "아빠, 이게 뭐야. 저게 뭐야." 조잘거린다. "아빠, 카드 삑 왜 해?", "왜 (사람들이 탈 때) 안녕하세요 해?" . 아빠는 딸의 쉼 없는 질문 세례에도 자상하게 대답해준다. 그 꼬마를 보며 세상에 대해 이것 저것 궁금해하던 나를 떠올려본다. 아쉽게도 고망쥐 같이 재잘대던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 없다. 대신 저 아빠처럼 아이들의 질문을 들어줘야하는 나이쯤이 되었다. 어젠 눈가 주름이 깊게 패인 아빠가 나에게 새로 산 청바지가 어떠냐고, 새로 한 머리가 젊어보이냐고 물었다. 참 신기하다. 고망쥐는 어른이 되려 하고, 아버지는 청춘이 되려 하네. 삶은 직선이 아..
전주에 다녀와서 ​ 오늘 34도가 넘는 찌는 폭염 때문에 전주 곳곳을 다 둘러보지 못하고 덕진연못 정자에서 그리고 교동다원에서 어제 산 책을 읽었다. 주로 주역, 맹자, 노자 사상에 관련된 얘기였는데 동양사상이 이렇게 재밌는지 모르고 산 세월이 후회될 정도였다. 강암 송성용 선생의 서예관에서 필체와 현판을 구경했는데 그 중 내 마음을 울린 구문이 있었다. '덕승재(德勝才)'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덕이 높은 사람은 이길 수 없다는 말이었다. 덕 높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게 쉬울까 싶다. 어쨌든 뽐내고 자랑해야 살아 남고 직업을 구할 수 있는 시대에서는 특히. 허허 나는 재보다 덕이 앞선 군자가 되고 싶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