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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 놀이

골목길

골목길_심민경


수업 끝을 알리는 학교 종을 듣자마자, 학교 후문을 나와 골목골목을 지나서 집으로 가는 길이 난 참 좋았다.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집 현관에 던져버리고 나와, 대현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생각에, 새로 배운 소나티네를 얼른 쳐보고 싶어서 피아노 학원으로 뛰어갈 때나.생명줄 교회가 있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개바위 언덕 옆문을 빠져나오면 공덕현대아파트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었는데 그 놀이터가 우리 동네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열 살까지는 그곳 미끄럼틀 꼭대기에서 남산타워를 구경했다. 몇 해가 지나 남산타워를 구경하는 낙도 새로 생긴 아파트의 탄생과 함께 사라졌다. 그보다 더 어릴 적 놀이터에 다니는 동안, 매일 방앗간에서 무언가를 빻는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후에 그 소리가 아파트 공사 때문에 나는 소리였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실망을 했다.


골목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옷을 갈아입었다. 골목 모퉁이 나무에 타닥타닥 붙은 매미들이 온 목소리로 여름을 알리기도 했으며, 가을이면 마당이 꽤 넓은 집에 심어진 감나무의 감들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려 터진 감을 피하느라 분주하게 발을 움직였다. 겨울 아침의 골목길은 지난밤 소리소문없이 내렸던 하얀 눈을 쓸어 담는 소리로 가득하였다. 다시 봄이 오는 것을 나는 언제 알았을까. 우리 집 건너편에 심어진 하얀 목련의 눈이 뾰족하게 나올 적이었다.


유년시절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그 골목길은, 아파트 재개발로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또래 동네 친구들과 킥보드를 타던 울퉁불퉁한 길도, 엄마가 택시를 타고 내릴 때 꼭 세워달라고 했던 우리 집 앞 큰 전봇대도, 사납게 짖어대던 파란 대문집 치와와도 모두 말이다. 원수처럼 으르렁대던 앞집 인주가 그렸던 낙서도, 모두. 더 정돈되고, 말끔한, 깨끗한 도시의 모습을 꿈꾸며 사라졌다.


지금은 포크레인으로 허물어진 유년시절의 기억 조각을, 그저 포크레인으로 허물고 세워진 또 다른 곳에서 다시 맞춰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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