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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 놀이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나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나,


진정한 ‘나’는 정말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눈으로 본 ‘나’인가. 참으로 헷갈려 했던 적이 많다. 사실 모르겠다. 사람들에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사랑하는지 내 마음 깊숙히 숨겨두었던 엉망스럽게 물러터진 나의 모습까지 사랑하는지.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라서, 불꽃 처럼 순식간에 타오르는 나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사그라드는 나의 모습도 나기는 나다. 당신은 몰랐으면 하는데, 재채기도 사랑도 숨길 수 없듯 내가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당신은 기어코 나를 알아차리더라. 정부의 프로파간다처럼, 호기롭게 취업시장에 나를 팔려고 했을 때 처럼, ‘용맹한, 도전적인, 열정적인, 똑똑한’ 을 부끄럽게도 사람들에게 내세운 적이 참으로 많았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나는 ‘두려운, 겁이 많은, 안일한, 현학적인’ 내가 서 있다. 어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을 때, 메뉴판에 적힌 요리를 묘사하는 단어 하나하나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었다. 전혀 먹어본 적은 없었지만 형용하는 그 말이 너무 아름답고 맛있어 보여,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그 요리를 고른적이 있었다. 기대가 컸던 걸까. 혼자만의 예상과는 달리, 조화 없이 따로 노는 정반대의 요리가 나와서 나를 실망시켰다. 가끔 나는 두렵다. 내가 이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메뉴판처럼 사람들을 끌어 모은 후, 한 번 맛 보면 다신 먹고 싶지 않은 그런 음식이 될까봐. 그래서 내가 원하는, 전혀 도달 할 수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 후에, 사람들이 떠날까 두려워 내가 아끼는 못난 잔챙이들을 다 제거시키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한 마리의 백조는 고고하게 호수를 건너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되고 싶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못난 발을 내보이는 것은 싫으니까. 그래 못난 발이, 나다. 고고하지 않은 게 나다. 모순적인게 나다. 나의 말 보다 남의 말에 요동치는, 그래 그것도 나다. 몰랐으면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당신이 나의 못난 발까지 사랑해줬으면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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