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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 놀이

라디오

누구는 나에게 음악 취향이 애늙은이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대부분은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세상에 나왔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의 애늙은이 음악 취향은 엄마의 태교모음 집에서 이 할, 아빠 차 뒤에서 이 할, 지나가는 광고 음악에서 일 할, 나머지는 즐겨듣던 라디오에서 나왔다. 나는 언제 라디오를 많이 들었을까. 사람들이 mp3를 목에 걸고 다녔던 시점과 더불어, 중학교때 특히나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분주하게 영어학원을 다니던 시절, 학원 셔틀버스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버스기사님들이 좋아할 법한 라디오 퀴즈가 흘러나올 때 등원을 하고, 잔잔하고 감성이 묻어나는 곡이 나올때 쯤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마포에서 공덕 오거리에서 P턴을 하고 신호를 기다리며 대흥역 방향으로 갈때 쯤에는 항상 라디오에서 같은 멘트가 흘러나왔다. 멘트가 끝난 다음에는 항상 신기하게도 그날의 기분에 맞는 곡들이 흘러나왔다. 노래를 다 듣기도 전에 학원 버스에서 내려서 여름날엔 더운 공기, 겨울에는 칼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걸어갔다. 집에 가서 씻고 숙제를 할 쯤에 나오는 곡들은 항상 나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 그때 진행자가 소개했던 곡들을 제빠르게 공책에 적어 나중에 찾아 듣기도 했고, 녹음을 해서 보관하기도 했다. 특히나 새벽 12시에서 1시 쯤에 흘러나왔던 노래들이 지금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들이 되었다. 장혜진이나 김광석, 김동률, 패닉, 김연우가 중학생 꼬마의 음악 목록에 있었으니. 신기하다. 라디오는 내가 치열하게 공부했던 시절에 늘  함께했다. 학원 버스에서, 야자실에서, 새벽 식탁 의자에서 나를 다독여주고 위로해줬다. 분명히 나는 혼자인데 라디오를 틀면 고요와 적막을 깨는 좋은 친구와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그때 들었던 오래된 노래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줘서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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