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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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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있는 죽음 언젠가 종합병원에 입원했을 때, 새벽에 코드블루 (심정지) 소리에 놀라 깬 적이 있다. 같은 병동, 제일 위독하셨던 할아버지의 방이었고 나는 그때 처음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종합병원이란 곳에서는 하루동안 누구는 태어나고, 누구는 아프고, 누구는 나아가고, 누구는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게 나였으면 어떡하나 두려운 마음에 공포와 슬픔이 교차하며 눈물로 베갯잇을 적셨다. 퇴원을 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고, 죽음의 공포에서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죽음을 두려워 했는지 조차도 잊을 만큼 나는 살아 있다는 것에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에 익숙해졌다. 잊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참 많이 죽는다. 움베르토 에코 할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듣고. ​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나 당신이 몰랐으면 하는 나, 진정한 ‘나’는 정말 진정한 ‘나’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눈으로 본 ‘나’인가. 참으로 헷갈려 했던 적이 많다. 사실 모르겠다. 사람들에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을 사랑하는지 내 마음 깊숙히 숨겨두었던 엉망스럽게 물러터진 나의 모습까지 사랑하는지.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라서, 불꽃 처럼 순식간에 타오르는 나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사그라드는 나의 모습도 나기는 나다. 당신은 몰랐으면 하는데, 재채기도 사랑도 숨길 수 없듯 내가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당신은 기어코 나를 알아차리더라. 정부의 프로파간다처럼, 호기롭게 취업시장에 나를 팔려고 했을 때 처럼, ‘용맹한, 도전적인, 열정적인, 똑똑한’ 을 부끄럽게도 사람들에게 내세운 적이 참으로 많았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나는..
골목길 골목길_심민경 수업 끝을 알리는 학교 종을 듣자마자, 학교 후문을 나와 골목골목을 지나서 집으로 가는 길이 난 참 좋았다.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집 현관에 던져버리고 나와, 대현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생각에, 새로 배운 소나티네를 얼른 쳐보고 싶어서 피아노 학원으로 뛰어갈 때나.생명줄 교회가 있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개바위 언덕 옆문을 빠져나오면 공덕현대아파트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었는데 그 놀이터가 우리 동네 친구들의 아지트였다. 열 살까지는 그곳 미끄럼틀 꼭대기에서 남산타워를 구경했다. 몇 해가 지나 남산타워를 구경하는 낙도 새로 생긴 아파트의 탄생과 함께 사라졌다. 그보다 더 어릴 적 놀이터에 다니는 동안, 매일 방앗간에서 무언가를 빻는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후에 그..
라디오 누구는 나에게 음악 취향이 애늙은이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대부분은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세상에 나왔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의 애늙은이 음악 취향은 엄마의 태교모음 집에서 이 할, 아빠 차 뒤에서 이 할, 지나가는 광고 음악에서 일 할, 나머지는 즐겨듣던 라디오에서 나왔다. 나는 언제 라디오를 많이 들었을까. 사람들이 mp3를 목에 걸고 다녔던 시점과 더불어, 중학교때 특히나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분주하게 영어학원을 다니던 시절, 학원 셔틀버스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버스기사님들이 좋아할 법한 라디오 퀴즈가 흘러나올 때 등원을 하고, 잔잔하고 감성이 묻어나는 곡이 나올때 쯤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마포에서 공덕 오거리에서 P턴을 하고 신호를 기다리며 대흥역 방향으로 갈때 쯤에는 항상 라디오..
향수, 기억되고 싶은 증거 ​ 본래 사람은 저마다 다른 향을 가진다. 비누, 바디클렌저, 샤워젤, 애프터쉐이브, 스킨로션, 향수를 바르기 전, 몸 속 부준히 움직이는 세포 하나 하나의 화학작용이 모여 몸에 맞는 향과 맛을 만들어낸다. 같은 향수를 뿌려도 사람마다 다 다른 향기가 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몸 속에 일어나고 있는 화학작용의 결과물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우린 매일 향을 입고, 바르고 또 다른 향을 만들어 낸다. 이른 아침 상쾌한 공기 냄새를 채 잊기도 전에 지하철로 들어가는 계단을 지나, 개찰구를 지나, 출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플랫폼에서 보편적인 남성다움의 스킨 냄새, 향수 냄새가 난다. 열차가 오고 있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오르고 내린다. 어지럽게도 꽉 찬 열차 내부만큼이나 여러 향들이 시끄럽게 내 머릿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