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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클래식 음악 입문 계기- 이게 다 영창피아노 때문이야


내가 절대 음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처음으로 피아노학원에서 악보 없이 내가 좋아하는 곡을 선생님 앞에서 쳤던 날, 선생님은 놀라서 바이엘을 건너 뛰고 체르니100부터 시작하자고 말씀하셨다 (정말로). 그때 부랴부랴 콩나물들을 배우고 악보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피아노를 친 것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인 다섯살 무렵이었다. 외할머니께서 즐겨 부르신 '소양강 처녀'를 듣는 대로 친 것을 계기로 종종 이모방에 들어가 갈색 영창피아노 (지금도 우리집 거실에 있다) 를 치기 시작했다. 처음 내가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된 계기는 엄마가 나를 음악 신동으로 키우려는 것도 아니었고, 엄마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동네 골목대장이었던 나와 동생을 그만 놀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때부터 (1999년) 나는 본격적으로 클래식에 빠지게 되었다. 사실 엄마는 태교를 위해서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그게 내 절대음감 (?)에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아빠 회사에서 고객사은품으로 만든 클래식 컴필레이션 앨범에 있는 음악 순서들을 다 외울만큼 열심히 들었다. 지금도 파헬벨 '캐논'이나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그리고 요한 스트라우스 2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을 들을때면, 마포에서 여의도로 갈때 마포대교 위를 차를 타고 달렸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피아노는 배우면 배울수록 정말 재밌는 악기였다. 원장님이 칭찬을 많이 해주신 덕에 더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배운지 2년만에 나는 콩쿠르에 나가게 되었다. 곡은 모짜르트 소나타 16번 K545였다 (도 미솔 시도레도~). 2001년, 학원 거실에 (학원이 가정집이었다) 처음으로 그랜드 피아노가 생겼는데 콩쿠르에 나가기 전 나는 프로 피아니스트가 된 것마냥 내 연주에 심취해서 곡을 쳤다. 콩쿠르에 나가기 위해 아현동 웨딩타운과 신촌 현대백화점 (당시 그레이스백화점이었나? 기억이 잘 안난다)을 돌아다니며 대회에 입을 드레스를 찾아 다녔는데 하나도 맘에 드는게 없어서 엄마와 나는 대회 직전에 드레스를 빌리기로 결정했다. 대회 하루 전, 좀처럼 긴장을 하지 않던 난 트릴이 잘 되지 않자 대회에 못나갈 것 같다면서 서럽게 울었다. 머리를 하기 위해서 단골 미용실에서 머리를 단정하게 올렸고 (그런데 아무리 젤과 스프레이로 고정시켜도 잔머리가 너무 많아서 예쁘진 않았다). 나를 달래기 위해 엄마와 아빠는 연세대학교 근처에 있는 설렁탕집에 데려갔고, 세종문화회관으로 가는 차안에서 화장을 해주려는 엄마를 겨우 말렸던 기억이 남아있다 (결국 립스틱만 칠하는 것으로 타협). 그때 나는 인위적으로 보이는 화장이 정말 싫었다. 하하. (지금은 선택권이 없다. 화장을 해야 하는 나이.)악보 하나 가져오지 않은 나는 멀뚱멀뚱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대여한 빨간 드레스를 입고 또래 애들이 선생님들과 하는 얘기를 주워들었다. 어떤 선생님은 심사의원이 그만 하라는 종을 치더라도 계속 연주하라고 주문을 했다. (일찍 종소리를 들을수록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의미...)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덤덤했다. 몰랐는데 나는 강심장이었다. 다장조로 시작되는 곡에서 바장조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실수할까봐 조마조마했었는데 실수 없이 쳤고, 처음 나간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금도 아빠는 그때의 나를 굉장히 자랑스러워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계속 피아노만 할 줄 알았는데, 플룻의 매력에 빠지는 바람에 플룻을 시작했다. 잘 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열정이 넘쳤다. 참관수업을 위해서 내 수준보다 높은 악보를 사서 연습했는데 그 곡이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이었다. 그때도 선생님이 잘한다 잘한다 해주셔서 재능은 없었지만 플룻 자체의 매력에 푹 빠졌던 것 같다. 그덕에 고등학교 1학년 합창대회 찬조연주로 친구와 플룻공연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형편없는 실력에 자신감만 넘쳤던 것 같다. 하하. 


나는 내가 계속 음악쪽으로 나갈줄 알았다. 그런데 음악인이 될 운명은 아니었나보다. 피아노와 플룻 말고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나는 외교관이 되고싶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중학교3학년 때까지 내 생활기록표 장래희망칸은 외교관으로 채워져 있었다. 왜인지는 지금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 그렇게 중학교 입학을 하면서, 외고에 가고싶은 꿈을 갖게 되면서 피아노는 내 주요 일과에서 멀어져 취미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클래식 듣는 것을 멈춘 적은 없었다. 어릴적 이모는 출근하는 시간에 늘 93.1MHz KBS 클래식 FM을 켜놓고 화장을 했다. 처음엔 그게 라디오였는지 모르다가 중학생이 되서야 이모가 들었던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을 알게되면서 클래식 FM에 빠지게 되었다. 가사가 없는 클래식 음악은 집중하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특히 수학문제 풀때 바흐곡. 자신감이 떨어질 때는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파란만장할 수 밖에 없는 사춘기 시절이 정말 조용히 지나간 것은 클래식 덕분이 아니었나 짐작해본다 (응?).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취향이 바뀌나, 어릴땐 바흐, 모짜르트, 베토벤이 좋았는데 이제는 쇼팽, 라흐마니노프, 리스트가 좋다. 팡팡 터지는 곡보다는 잔잔한 곡에 더 마음이 간다. 오늘 아침엔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을 들었고, 지금은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2악장을 들으면서 글을 쓴다. 일단 클래식에 입문을 시켜준 엄마에게 가장 감사하다. 클래식은 들으면 들을수록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매력 있는 장르인 것 같다. 하지만 함정은 내가 클래식뿐만 아니라 헤비메탈을 제외한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헤비메탈은 들어보려 했지만 영 정이 안가더라. 내 생애 첫만남인 클래식을 시작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애정을 갖게 되었고, 지금은 잡식성 리스너다. 가끔 힘이 안날때는 에이핑크의 'Good morning baby'가 제일 힘나는 곡인 것 같아서. 하하하.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모든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 존중해요. 존경해요! 지금은 내가 음악과 꽤 먼 공부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을 살릴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가 지금 피아니스트 처럼 현란하게 피아노를 칠 순 없지만 어린시절 내게 자신감을 주고 음악적 감동을 안겨준 것만으로도 피아노를 알게 된 것이 참 감사하다. 그거면 된거지 뭐. ABBA의 Thank you for the music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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